Patterns, Guts: Style and Substance in This Is How You Lose The Time War

Jake Casella Brukins 저, 김성일 역

역주: 번역과 게재에는 저자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한국어판을 갖고 있지 않아 작품의 인용구는 직접 번역했지만, 고유명사들은 한국어판을 가능한 한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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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톤의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이 장르의 중요한 상들을 수상했고, 단독 중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열광적인 팬층을 얻었다. 변호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나는 몇몇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일부 독자들이 “너무 문학적”이라고 부드럽게 비판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변호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중편이 장르에서 뭔가 특이한 것을 하고 있다는 그 주장은 <시간 전쟁>이 왜 그렇게나 특별한지를 훑어보는 시작점으로서 좋다.

당연하지만, “문학성”이 장르 SF에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장르판에서 널리 중요시되는 성질이 아니라는 감은 있다. 여기서는 느슨하게, “문학성”이라는 말을 문장과 구조 수준에서 일부러 친숙함을 파괴하는 기법들 — 비선형적 서사, 주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 개성적인 단어 선택 — 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언어 자체에 주의를 끄는 (특히 장르 독자들에게 “주류”나 “고급”으로 느껴질 만한 방식으로) 작품들을 가리키기로 한다. “MFA (순수미술석사) 같다”는 표현도 들어봤는데, 대개는 부정적으로 쓰인다.

SF나 판타지를 이야기할 때는 특별한 개념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장대한 아이디어, 신선하게 재조합된 기성 관행 같은 것들이다. 줄거리는 롤러코스터의 열차와 같아서, 흥미진진한 부분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기만 하면 된다. SF의 문장은 — 운율은 고사하고 — 적어도 팬들의 논의에서는 자주 무시된다. SF가 아이디어의 문학이라는 관념은 사실상 투명한 작법을 우선시해 왔다. 문장은 평이하고, 플롯은 큰 개념들, 이른바 “노붐”에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 놓는 역할만을 한다.

그런 접근법은 여러 장르 고전들에 흔히 보이는 흉악한 문장을 용서하고, 옥타비아 버틀러 같은 작가들의 천재성을 가리며, 형식에 실험을 가하는 작가들의 오랜 전통을 경시하게 만든다. 물론, 도피와 더불어 깊은 과학적/철학적 관념들을 제공하는 장르에 끌리는 오락 독자들이라면 “평이한 문장”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팬들의 선호를 재는 기준으로 휴고상 수상작을 들면, 폭넓게 보아 소설을 단도직입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뚜렷하다. 제미신이 해트트릭을 기록한 <부서진 대지> 삼부작은 비선형적 서사들을 얽고 2인칭을 넓게 활용하지만, 그 작품이 거의 유일한 예외다.

SF가 “반문체 anti-style”라고 하는 데에는 허수아비 논쟁 같은 면이 분명 있다. 그러나 <시간 전쟁>을 읽을 때는 그것이 유용한 전제가 된다. 이 작품은 갓 소개될 무렵부터 기본 설정을 넘어서는 관심을 받았다. 시간 전쟁의 양측에서 서로 적대하는 퀴어 인물들이 연인이 된다는 소개는 훌륭하지만, 솔직히 말해 소개가 훌륭한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에 매료된 것은 작품의 내용 때문이다. 운이 좋아 미리 책을 엿본 사람들 (나는 글래드스톤과 엘-모흐타르가 출간 1~2년 전에 했던 매혹적인 낭독회에 청중으로 있었다)은 이게 특별함을 금세 눈치챘다. 나는 출간 전과 후에 작품에 관한 관심이 이렇게 풍부했던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것이 중편임을, 그리고 시리즈에 속하지 않은 단독작임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나는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가 표준적인 SF 관행에서 벗어나는 몇몇 지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플롯과 세계 구축을 사실상 버림으로써 장르에 대한 친숙성을 공격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문체적 특징, 예컨대 많은 인유와 시적인 언어 사용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캐릭터의 전개다. 이 작품에서는 특이하고 매우 은유적인 방법으로, 서간문의 에로틱한 가능성 — 대화의 욕망 — 을 포용하고 물체와 심상에 투자함으로써 캐릭터를 전개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 소설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것은 모든 소설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뭔가 다른 것일 수 있다면 — 선율, 어쩌면 진실의 발견… E.M. 포스터, Aspects of the Novel